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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지혜

삶은 내게 끊임없이 선물을 안겼다

by Joyst 2020. 10. 9.


“내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헛일을 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비를 그치게 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당신도 마음속의 끊임없는 지껄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그리고 끊임없이 모든 것에 간섭하고 알려고 하는 그것이 다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을 놓고 벌이는 마음의 온갖 소동이다.”




끊임없이 지껄이는 마음에 빼앗긴 우리 삶을 되찾는 방법은 ‘지금, 여기’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사진은 최근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국립장성숲체원 편백나무숲에서 명상체험을 하는 사람들 / 한국관광공사 제공

명상가 마이클 싱어가 2007년에 내놓은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마음속에 먼저 올라오는 건 저항감이었다.

삶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진짜 원인이 마음의 온갖 소동이라는 게 맞는 말일까. 생로병사부터 개인적인 문제들까지가 다 마음의 문제라는 건가. 살아간다는 건 온갖 것들과 끊임없이 부딪치는 과정이다. 아프고 늙고 죽는 문제들만 아니라 진학·취업·결혼 같은 삶의 경로에서 문제들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튀어나왔다. 그렇게 50대에 이르렀다. 삶이 힘들었을까, 마음이 힘들었을까.

책을 놓을 수 없던 건 ‘마음속의 끊임없는 지껄임’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마음은 내가 접하는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옛날 일을 들추고 미래를 계획한다. 평상시에는 그럭저럭 그 소리를 다 들으며 지낸다. 그러다 삶의 중요한 문제와 마주하면 소리는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싱어는 마음속 불안과 두려움의 에너지나 욕망의 에너지가 쌓이면 이 목소리가 극도로 활발해진다고 말한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는데 후회나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 적이 왜 없겠는가. 이 책을 집어 들었던 때는 특히 마음이 힘들었다. 오래 준비했던 일을 그만두자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간 시간이 모두 낭비인 것만 같았고, 후회로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마음속의 끊임없는 지껄임’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사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안전한 지대에 머물기 위해 삶을 바칠 수도 있고 자유를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평생을 당신의 한정된 틀 속에다 매사를 끼워 맞추는 일에다 바칠 수도 있고 그 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에 바칠 수도 있다.”

지나고 보니 괴로움은 삶이 내게 들이민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회에 붙잡혀 지나간 시간에 갇혀 있는 마음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싱어가 강조하는 것도 삶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었다. 마음의 지껄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살 방법이 있다는 거였다. 마음의 지껄임은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막는다. 삶을 놓고 마음이 소동을 벌일 때, 바로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영혼을 돌봐야 한다.




라이팅하우스
마음이 끊임없이 지껄이는 건 어쨌거나 나를 위해서다. 잘 모르는 길에 선뜻 나설까봐 이전의 실패들을 들이대고 혹시 모를 위험을 경고한다. 싱어는 마음이 과거에 대한 견해와 미래에 대한 전망에 맞춰 현실을 조작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완충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의식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낸 현실의 모조품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모든 게 통제되는 느낌이 들도록 마음에 그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마음이 나를 위해 애쓰는 건 알겠는데, 그 마음에 갇혀 있는 삶에는 자유가 없다. 불안과 걱정에 휘둘려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그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싱어는 진정한 성장을 위해 내가 마음의 소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 마음이 아니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자다. 마음이 끊임없는 걱정을 늘어놓을 때 그 걱정을 관찰할 수 있는 ‘참나(self)’가 바로 나다. 싱어는 이러한 나를 발견함으로써 결국 나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좋은 현재가 쌓여 좋은 미래가 된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받아들여라. 삶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결코 삶을 온전히 살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삶을 사는 대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싱어는 끊임없이 지껄이는 마음에 빼앗긴 우리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지금, 여기’의 삶을 사는 거다. 이제까지 마음공부, 명상, 힐링에 관한 많은 책에서 만난 말이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때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만났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으면서 마음이 끊임없이 지껄인다는 걸 발견하자 내가 ‘지금, 여기’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준비한다고 치자. 냄비에 물을 받아 멸치 육수를 만드는 동안, 월말이 다됐으니 공과금을 내야겠네, 장을 보다 파를 빼먹었잖아, 저녁엔 뭐를 해 먹을까, 계란말이를 하기엔 계란이 모자라네, 같은 수만 가지 생각들이 오간다.

그런데 한편으로 ‘지금, 여기’에만 주목하는 게 잘사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미래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현재의 희생이 필요한 게 아닐까. 성적을 잘 받으려면, 대학에 들어가려면, 직장에 취직하려면, 안락한 노후를 보내려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나의 현재는 내내 이런 미래에 대한 걱정에 눌려 있었다.

마음이 끝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동안 된장찌개를 홀랑 태워 먹었다면 밥을 차려 잘 먹을 수 없다. 사지 않은 재료를 후회하고 저녁식단을 걱정하는 것보다 눈앞의 된장찌개를 잘 끓이는 게 낫다. 파를 살 때는 파에 집중하고, 찌개를 끓일 때는 찌개에 집중하는 게 좋다. 그렇게 매 순간 정성을 다하면 모든 끼니가 풍성해지는 거다. 오랫동안 현재와 미래를 양자택일로 생각했다. 이제는 좋은 현재가 쌓여 좋은 미래가 될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어느새 50대다. 남아 있는 삶을 생각하면 미래에 내줄 현재가 풍족하지도 않다.

“당신은 다만 삶이 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있으며, 그 선물이란 당신의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임을 깨달아야 한다.”

싱어는 삶의 사건들을 선물이라고 말한다. 삶은 내게 끊임없이 선물을 안겼다. 어떤 선물은 기쁨을 주고 어떤 선물은 고통을 줬다. 그 선물을 여전히 덥석 받아들지는 못한다. 나의 마음은 이 선물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부터 따지고, 선물을 받아들며 무게에 휘청거린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이 모든 선물을 조금은 용감하게 열어보고 싶다. 그게 남은 삶을 위한 최선일 거다.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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