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나는 늦게 철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나이까지 일해 왔는지 모른다. 앞으로 더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전하는 교훈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은 남는 것이 없다. 더불어 산 삶은 행복했다. 겨레와 국가를 위해 걱정한 마음은 남는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소유욕으로 작용한다. 때로는 남의 것을 빼앗더라도 내 만족과 즐거움을 채우고 싶어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재물에 대한 소유욕이나 권력에서 오는 행복감은 작았다. 일찍부터 종교적 가치관을 택한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명예욕은 80이 될 때까지 잠재해 있었다. 남들이 받는 영예로운 상을 한 번은 받았으면 싶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보았다. 상을 받을 만한 인품과 자격도 없는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 않고 상을 받는다. 그 결과로 본인도 부끄러움을 당하고 상을 준 기관에도 불명예를 남긴 사례들이다. 차라리 받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90이 넘은 나이에 내가 두세 차례 수상자가 되어 보았다. 자랑스럽거나 영광스럽다기보다는 더 무거운 부담과 사회적 책임을 느끼면서 살게 되었다. 내가 원해서 받은 상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이 인생의 목적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주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기주의자는 언제 어디서나 행복해지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절제하고 많이 베푸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누린다. 인간을 상하 관계로 보는 사람,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고 사회에도 고통을 남긴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이란 이웃과 사회를 위하려는 사랑이 있는 경쟁인 것이다. 사랑이 있는 경쟁에는 패자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했는가. 이것이 곧 그 사람의 행복 척도다. 그래서 최고의 행복은 사랑이 있는 인격에서 주어진다.
옛날에는 생활 단위가 가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을 넘어 국가와 민족으로 성장하고 발전했다. 세계의 생활 질서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애국심이나 국민적 자각이 필요하다. 가정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섬기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 책임자나 사회 지도자 자격이 없다.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교통부 장관보다는 수많은 시민에게 안전과 친절을 베푸는 버스 기사가 애국자인 것이다. 국민의 의무와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윗사람이 되기 이전에 내가 하는 일이 나와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인지, 국민을 위한 봉사인지 물어야 한다. 우리는 큰일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작은 일이라도 이웃과 겨레를 위해 걱정하는 마음이 애국심인 것이다. 그 마음이 쌓이고 이어져 민족의 영광으로 남는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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