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불안과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지인이 해준 이야기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평소 말버릇처럼 "에구, 나이 들면 죽어야지. 살만큼 살았다"를 입에 달고 사시는데 이번 추석에는 모이지 말고 각자 지내자고 하셨단다.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살기에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뵙는데도 그때마다 뭐하러 오냐고 핀잔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방역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교류하던 이웃들과도 안 만나고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보면서 일상을 보내신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어머니가 말로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시지만 실제로는 코로나19로 죽을까봐 두려워하신다"고 했다.
가을을 맞아 부쩍 쌀쌀해진 기온을 느끼는 아침과 저녁이면 밀려오는 느낌이 있다. 막연한 허전함과 불안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들 비슷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유난히 가을 무렵에 무의미한 삶, 외로움, 상실감, 혼란스러움, 걱정 등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을 속에 스며 있는 겨울의 흔적을 미리 느끼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예감해서일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 존재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는 『죽음의 부정』에서 죽음생각에 대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인간이란 동물에 들러붙어 괴롭히는 것은 없다. 죽음은 인간 활동의 핵심적인 동기이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대부분 죽음이라는 숙명을 피해보고자, 죽음이 인간의 최종적인 운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부정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고자 계획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즐거움과 쾌락의 원천인 Libido(리비도, 삶의 욕구)는 몸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죽을 때까지 몸에 대한 집착을 한다. 하지만 몸은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을 알기에 죽음에 눈을 뜨고 '불멸의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언택트'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산소를 찾아가 벌초하지 않은 것을 조상에 대한 불효라고 여기며 어떻게든 벌초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나, '나'라고 상징될 수 있는 물건이나 장소를 번듯하게 만드는 것 또한 불멸의 탑을 쌓으려는 욕망이 아닐까. 죽음이 상기될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건강을 챙기고, 죽음의 '죽'자도 안 떠올리고자 애쓰며 삶에 몰두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한계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불멸적 존재임을 확인하려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선학(先學)들이 죽음에 대해 사유해왔다. 물론 어느 누구도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없기에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유만 가능할 터이다. 그러나 삶에만 몰입하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죽음을 코앞에 맞아 허둥대다 삶을 마치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인간은 질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사유한다. 삶이 사유의 대상이라면 죽음 또한 사유의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으면 끝인가, 끝이 아닌가? 사후의 삶이 있는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에도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기억 저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의 세계로 소환해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의미를 불어넣음으로써 삶에 활력을 넣는다. 이럴 때 비로소 삶과 죽음에 대한 통합적 사유가 가능해진다. 역설적으로 삶의 본질은 죽음을 마주할 때 드러나고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죽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형태가 사람마다 다르듯, 죽음의 의미 또한 개인마다 문화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 또한 사유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죽음생각에 좋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미 죽었다면 제때 문상을 갈 수 있어 좋고,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에 놀라지 않을 수 있어 좋고,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 점 구름도 없이 청명한 가을날이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글 : 양준석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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