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노화'란 건강, 경제적 안정과 더불어 가족·친구들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노년에도 이 세 요소가 잘 통합될 때 삶의 의미를 찾게 되죠.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ing)의 핵심은 결국 의미 있는 삶입니다."
최근 <나이 듦의 이로움>을 번역한 최원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남은 삶이 길지 않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감사,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이 '나이 듦의 이로움'"이라고 말했다. 노화가 ‘아름다운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가 짐 지운 가장으로서의 과도한 책임감 등이 중년 이후 남자의 상호작용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본래 상호작용을 잘 못하는데 한국 사회의 이런 속성이 더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한국 남자 노인이 더 외롭습니다."
<나이 듦의 이로움>의 저자인 앨런 D. 카스텔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는 "당신이 아직 노년기에 이르지 않았다면 지금 노년이 되기 위한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썼다. "성공적인 노화는 어느 연령에서도 시작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년기야말로 노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세네카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안다면, 노년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란 말을 남겼다.
-성공적인 노화를 돕기 위해 정책 당국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요?
"노인과 대학생이 한 집에서 사는 집 셰어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도입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영국·캐나다에선 이미 하고 있어요. 지금의 20대는 과거에 비해 훨씬 어립니다. 훌륭한 인생을 산 할아버지·할머니와 1~2년 살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고, 노인들도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맛볼 수 있죠. 노인들이 자원봉사를 하게 할 수도 있고 얼마간 경제적 보상을 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경우 노화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깨게 하는 게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훨씬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른 살까지만 살았으면 하는 대학생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분들의 삶이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좋다고 느끼게 될 거예요. 노화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정서적으로 편견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 차별이라는 행동을 하게 만들죠. 이런 맥락에서 대학에도 노화에 대해 가르치는 과목이 필요합니다."
그는 젊은이들도 젊었을 때 식사, 운동, 수면에 대한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서는 이런 좋은 습관이 몸에 배야 하고 좋은 습관 만들기는 젊은 날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하물며 시니어라면 걷기 등 운동을 더 늦기 전에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수명을 연장하려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해요. 인지적으로 명민함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계속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걷기 특히 함께 걷기가 가장 좋아요."
-노인들 자신의 고정관념도 있을 텐데요?
"새로운 문화에 대해 개방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에 비해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어렵지만 작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노력하는 노인도 많아요. 일례로 나이가 아래인 연하자를 포함해 새 친구를 사귀는 등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게 좋아요. 이웃이나 동네 식당 주인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관계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들이죠."
최 교수는 대학 시절 본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의 주인공 잭 니콜슨을 예로 들었다. 냉소적인 성격에 강박적 성격장애가 있는 이 남자는 단골 식당의 웨이트리스 헬렌 헌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직업이 로맨스 소설 작가인 그는 그녀를 만나 따뜻한 사람으로 바뀌었고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준 그녀와 로맨스를 시작한다.
"노화 곧 나이 듦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노화가 무조건 좋은 건 물론 아니죠. 하지만 노인은 인지적·지각적 감퇴에 적응하는 기제가 잘 발달해 있어요. 단적으로 자신의 보물을 어디에 숨겨뒀는지 잊는 노인은 없습니다. 기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반드시 기억한다는 거죠."
-성공적인 노화를 위한 좋은 취미로는 무엇을 꼽나요?
"미국 노인들은 대부분 취미가 독서입니다. 대학생들보다 2~3배 많이 책을 읽어요. 70대 노인이 대학생보다 작가 이름을 더 많이 알죠. 언어심리학자로서 2017년 노화 연구를 시작했는데, 제가 사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노인이 대부분 연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습니다. 어려서 책을 많이 읽으면 언어 능력, 인지적 능력이 발달합니다. 나이 들어 책을 읽으면 독서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 격차가 더 커요. 책을 통해 얻는 간접 경험의 가치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노인이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 인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책을 많이 안 읽으니 쉬운 책으로 시작할 수 있고 독서를 시작하면 안 읽는 사람과의 격차가 미국보다 더 클 거예요."
그는 도서관에 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 경험을 공유하게 돼 노후의 삶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독서를 통해 사회적 관계도 경험하는 거죠. 노인들이 함께 책 읽는 프로그램, 읽기 수준의 격차를 고려해 공공 도서관 사서들이 노인들에게 적합한 책을 맞춤 추천해 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저는 인지적 통제능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시력이 안 좋은 노인들을 위해 오디오북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독서 지도를 할 수 있는 시니어에게 이런 프로그램의 개발과 책 추천을 맡긴다면 일감과 수입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읽는 노인이 책을 읽어주고 함께 듣는 프로그램도 구상할 수 있다.
'성공적인 노화'를 중년에 시작하라
-성공적인 노화를 준비할 적기가 중년기인가요?
"그렇습니다. 40~50대가 되면 대부분 사회적 지위가 결정됩니다. 회사라면 CEO가 한 명밖에 없는 식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중년이 좌절을 경험합니다. 자녀 교육 등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자금 조달은 뜻대로 안 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 때죠. 이때 낙담과 스트레스로 잘못된 습관이 들 수 있어요. 특히 이 시기에 사회적 관계를 해치는 건 노년 대비에 나쁜 영향을 끼쳐요. 하버드대 연구진이 실행한 노화에 관한 종단 연구에 따르면 40~50대 때의 사회적 유대가 70~80대 건강 유지 즉 성공적인 노화에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특히 자녀 등 가족관계는 물론 이혼율이 높은 미국의 경우 재혼한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도 중요합니다."
-'회사 인간'으로 살아온 한국 남자는 특히 노년에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년기에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공감하는 훈련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습화된 정서랄까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해요. 퇴직 전까지 돈 버는 기계로 살았다면 용도를 다한 후엔 폐기될 운명일 수밖에 없어요."
-만 100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60~75세가 가장 행복했다는 데 친구들과 의견이 일치했다고 합니다.
"사회 정서적 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되면 소수의 사람들과 더 깊은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게 되고 그래서 더 행복해한다는 거죠. 또 여생이 길지 않으니 미래에 대한 걱정도 줄고, 미래를 위한 시간 투자도 할 필요가 없죠. 결국, 현상황에 감사하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게 됩니다. 감사는 성공적 노화에 중요한 요인이죠."
-노년기엔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면서요?
"본인의 한계를 느끼면서 신과의 교감에 감사하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공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노트르담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고령의 수녀들은 뇌 상태가 치매 환자와 동일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매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고장 났지만 다른 정상적 뇌가 그 기능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유전성 치매의 가족력이 있다면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이 답일까?
"좋은 습관을 유지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았습니다. 또 이분들은 식사를 항상 함께 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고,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를 하라는 거죠."
노년에도 주체적인 결정을 해야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명, 장기 기증 등은 어떻게 보나요?
"이런 중요한 결정을 주체적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노인들이 요양원에 들어가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도 주체성을 잃기 때문이에요.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운동 프로그램을 선택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 요양원 프로그램이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노년의 롤 모델로 누구를 꼽나요?
"은퇴하신 물리학과 교수 한분이 젊은 사람들과 만나 잘 베푸시고 많이 알지만 티 내지 않고 소통하시는 걸 봤습니다. 70살이 됐을 때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년에 꼭 필요한 게 뭘까요?
"계속 공부를 하고, 목적의식을 지녀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죠. 현재를 즐기되, 현재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글 : 이필재 / 인물스토리 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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