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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돌길 #역사길 #무등산사랑환경대학 51기 역사길 걷기

by Joyst 2020. 10. 25.

무등산사랑환경대학 51기 야외교육 5강

일시:2020.10.24.09:00~
집결장소 : 충장사(개별이동)
준비물: 명찰,교육생모자,마스크,경등산차림,식수,간식 등

과목:무등산역사길과 충장공
강사: 교학처장 채현준
과정: 역사길 교육 종료후 평촌도예공방에서 도자기 체험 실시

철수:관광버스로 이동(충장사 정차 및 무보협 앞)

충장사 忠壯祠 -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의병장

★ 김덕령 조선 의병장이 되다.

○1568(1세) 12.29일 광주 석저촌에서 3남3녀중 둘째 아들로 출생.
○1571(4세) 종조부 사촌 김윤제로부터 글공부 시작.
○1572(5세) 종조부 사촌 김윤제 사망.
○1581(14세) 아버지 붕변 사망.
○1585(18세) 흥양이씨 와 혼인.
○1587(20세)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
○1592(25세) 6월 5일 형 덕홍과 의병에 참여.
6월 병환중인 어머니 봉양을 위해 돌아가라는 형의 권유로 귀향.
7월 10일 형 덕홍, 고경명과 금산전투에서 순절.
○1593(26세) 어머니 반씨부인 사망.
10월 27일 담양부사 이경린과 장성현감 이귀가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에게 글을 올려 의병장으로 천거.
11월:자형 김응회, 동생 김덕보 그리고 송제민이 충과 효 사이에서 고민하는 덕령에게 거병을 권유.
:전라관찰사 이정암 덕령에게 거병권유.
:묵최로서 계의 의병으로 나설 것을 결심하고 거병,
: 약 3천의 의병을 모아 도원수 권율에 보고하고, 권율로부터 '초승군' 이라는 표장을 받다.
○1593.12.13일 전라관찰사 이정암이 덕령을 의병장으로 발탁하는 장계를 조정에 올린다.
○1593.12.22일 분조인 세자를 삼례에서 만나다.
12.25일 세자로부터 '익호장군' 이란 군호를 받다.
12.27일 전주 무과시험장에서 시범을 보이다.
○1594.1.1일 선조로부터 '충용군' 이라는 군호를 받다.
○1594.1.5일 선전관과 형조좌랑(정6품)에 임명됨.
○1594.2월 고성, 창원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다.
○1594.4.1일 특명으로 각 도의 의병을 혁파하고 김덕령에게 예속시킴에 따라 전국 의병의 총수가 되다.
○1594.8월 고성지방에서 노략질하는 왜군을 물리치다.
○1594.9.26 10.7 수륙연합작전인 '거제 장문도해전'에 이순신, 원균, 곽재우와 참전,
○1595.3월 왜병을 정암 아래에서 크게 섬멸하다.

⊙사면과 복권 그리고 선양

○1661.8.30(현종2년) 김덕령 장군을 신원 시키고 복권하도록 명하다.
○1668.4.17(현종9년) 병조 참의에 증직되다.
하서 김인후(이조판서), 수은 강항(병조참의)도 함께 증직.
▶ 현종 즉위년부터 11년 12년을 정점으로 가뭄, 지진, 기근, 전염병이 계속 됐는데 그에
따른 호남민심 달래기가 아닐까?
○1678.3.1(숙종4년) 회재 박광옥과 함께 벽진서원에 합향.
○1680.8.24(숙종6년) 왕명으로 사액.
10.15 병조판서로 가증.
○1681(숙종7년) 액호를 의열사로 바꾸다.
○1694(숙종20년) 왕명으로 「김충장 공유사」 처음편찬.
○1785.9.8(정조9년) 특명으로 시호를 의논케 하다. 덕홍은 지평, 덕보는 집의를 증직.
○1788.4.6(정조12년) 충장 이란 시호를 주다.
11.16 김덕령과 홍양이씨의 정려비를 세우게 하고 석저촌의 이름을 충효리로 하사하다.
○1789.1.14(정조13년) 종1품 좌찬성에 가증되다.(흥양이씨는 정경부인)
○1791.4.26(정조15년) 『김충장 공유사」를 다시편집. 간행토록 하다.
○1971년4월 충장공 김덕령 장군 사우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1974.4.4 충장사 기공식.
○11.26 지금의 자리로 이장.(11.19 파묘)
○1975.4.27 준공식(6천여명), 총사업비 1억3천만원,

풍암정사 楓岩亭舍 : 아름다운 정자, 가슴 아픈 사연

풍암정사
○ 풍암 김덕보가 1614년(추정) 지음.
○ 원효계곡과 어우러진 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이 정자는 많은 사람들이 시와 글을 남김.
-제봉 고경명
-석천 임억령 「그림 같은 도원승경 이곳에서 보았노라」
-기암 정홍명(송강의 넷째아들, 풍암기)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암괴석 사이에 백여 그루 단풍나
무가 끼여 있어 가을이 한창인 때에는 서리 맞은 고운
단풍잎이 물위를 비추어 물빛이 단풍이고 단풍 빛이 물빛이다」
○ 이 아름다운 정자에는 한집안, 한사람의 가슴 아픈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있음.

풍암 김덕보 楓巖 金德普(1571~1627.)
○ 1571년 광주 석저촌(충효동)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남.
○ 1581년(11세) 아버지 세상을 뜨다.
○ 1592년(22세) 임진왜란 발발.
○ 6.5일 큰형과 작은형 의병에 참여..
○ 7.10일 큰형 덕홍(16세 연상) 고경명 장군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
- 1593년(23세) 어머니 세상을 뜨다.
○ 11월 작은형 의병을 일으키다.
<상중인 작은형이 의병장 권유를 받고 충과 효 사이에서 주저하자 “임금이 욕을 보는 때를 당하여
마땅히 신하가 죽는 절개를 바쳐야지 어찌 효를 굽혀 충을 펴는 것이라 해서 어렵게 여길 수 있겠습니
까? 우리 형제가 마땅히 함께 국란에 나서야 하겠지만 여막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형님은 국란을 평정하러 나아가십시오. 이 아우가 여막을 지키겠습니다" 라며 형의 거병을 독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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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kV4u_spI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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