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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사랑 환경대학 51기 야외 4강 푸른길 걷기

by Joyst 2020. 10. 17.

무등산사랑 환경대학 51기 야외 4강
광주역 모임.

일시:10.17(토).09:00
광주역앞
준비물 : 모자,명찰,식수,간식,마스크필수
종료:12:00

강사 채현준

숲과 문화가 숨쉬는
도심속 무돌길을 걷다(푸른길)

광주역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2동에 있는 광주선의 철도역이다. 광주의 도심부에 있어
서 이용객이 많다. 광주선의 종착역으로 용산역으로 가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와 목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다.
1922년 7월 1일 광주 대인동 소재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1930년
12월 30일 남조선 칠도주식회사가 광주~여수 간 155.5㎞의 영업을 개시해 오
다가 1936년 3월 1일 국철(國鐵)로 이관되었다.

원래는 경전선상의 철도역이었으나, 경전선 도심 구간 선로 이설 사업으로 광주 ~
남광주 ~ 효천 간 선로가 철거되어서 경전선의 지선인 광주선의 종착역이 되
었다.
현재의 역사는 1969년 7월 25일에 준공되었다.

<광주역사>
1922년 7월 1일 : 동구 대인동에서 영업 개시(현지의 광주 동부소방서)
1969년 7월 25일 : 현 위치로 역사 이전
1981년 3월 2일 : 서울 ~
경전선 광주경유 ~
순천 특급열차 운행개시
2000년 8월 10일 : 경전선 효천 ~ 송정리 구간 이설로 광주선의 종착역이 됨
2004년 4월 1일 : KTX 영업 개시
2015년 4월 2일 : 호남고속선 개통에 따라 KTX 정차역이 광주송정역으로
일원화되어 KTX 진입 중단.

* 푸른길

푸른길은 광주 도심을 감싸며 통과하는 경전선 구간중 광주~효천역간의
10.8km가 이설되고(1995년) 폐선(2000년 8월)을 거쳐 그 중 7.9km가 공원으로
결정(2002년)됨에 따라 성립한 도시 공원을 말한다. 광주 도심철도 폐선부지 푸
른길 공원이라고 해야 그 탄생배경을 포함하는 정확한 표현이지만 지금은 그저
푸른길로 불리는 좁고 긴 땅이다. 폭2m 내외의 산책로가 이어지며 나머지 공간
에 꽃과 나무가 심어지고 가끔 소규모 광장과 만나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1980년대부터 도심철도 폐션 요구를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을 딛고 전 구간을 도시 숲길로 만들고자 하는 ‘그린웨이’로의 기대가 담겨
있다.

도심철도는 근대 교통시설의 상징이기도 하였지만 도시 확대와 더불어 자동차
도로와의 상충, 소음피해와 인명사고 다발로 1980년대부터 이설요구가 본격적
으로 제기 되어 왔다.
철도이설 결정 이후에는 부지의 활성방안을 둘러싸고 수많은 갈등과 논의가 이
어졌는데, 부지를 매각하겠다는 광주시의 최초 방침이 도로나 경전철 부지의 활
용으로 바뀌었다가 결국 최종적으로 푸른길로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은 한 때 도
로나 주차장을 요구했던 철도주변 주민들의 합의와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길 공원의 지정면적은 약 10,800평방미터이지만 그 폭은 10m도 못되는 좁은 곳 에서부터 넓어야 20m정도이며, 따라서 요즘의 도시 근린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충분한 운동시설, 널찍한 휴게시설은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의 땅이다. 그러나 공원녹지 면적이 매우 부족한 도심부 주변을 감싸고 연결되는 녹지
네트워크로써, 열악한 주거지역을 위한 생활 녹지로써, 주변 주거 재개발지역에
서의 경관적 실마리로써 그 역할이 크게 기대 되고 있다.

* 농장다리
동명동과 지산동을 이어 주던 다리로 동명동에 교도소가 있을때 죄수들이 길을
건너 농장(지금 법원일대)으로 가는 길이라서 그렇게 불려진 곳이다. 농장다리는
화순으로 가는 경전선 기찻길 위로 건너는 도로다. 교도소 자리인 지금의 전남
여고 뒷편 동명동 자리가 주택가로 변하였고 농장부지는 주택가로 그리고 농장
건물이 있었던 지역은 지금의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농장다리가 있는 동명동은 본래 집이 거의 없는 야산 구릉지였으나 1908년
광주 감옥이 동명2동 200번지 일대에 설립되면서 동명1동 고지대는 감옥 농장
이 조성 되었고 이를 관리한 일본인들의 사택이 지어지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
해방 뒤 소년형무소 자리에 동명여중이 설립되고 1971년 광주교도소가 문화동
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주택가로 변했다. 교도소에서 모범수를 데리고 나와 지
금의 동명로 길을 따라 농장으로 이동하여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던 당시의 농장
다리는 광주역과 남광주를 잇는 철길 위에 얹어져 있었다. 농장다리 아래로 사
람들의 통행이 가능했으나 광주역의 이전으로 철길의 방향이 바뀌면서 인도는 없어진 채 다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채현준 교학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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